ESG Insight 알고리즘은 무엇을 보고하고, 무엇을 누락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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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 기술, 그리고 ESG 보고의 인식론적 전환
From augmentation to reconstitution: The epistemological reconfiguration of ESG strategy in the age of intelligent systems
20세기 후반, 조직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주체였다.
그러나 21세기 중반이
다가오는 지금, 조직은 데이터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데이터가 스스로를 조직하는 구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ESG 영역은 이 거대한 전환의 최전선에 있다. 특히 지속가능보고서는 지금, 인간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기계의 언어로 세계를 정량화하고 재구성하는 메커니즘으로 진화 중이다.
단순한 기술도입의 차원을 넘어, AI와 데이터 기술이 ESG 보고의 구성원리 자체 즉, 누가 무엇을 인식하고 선택하며 서술하는가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분석한다.
1. ESG 보고는 더 이상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구성하는 계산장치다.
전통적인 ESG 보고는 연례적이고 서술 중심이었다. 기업이 ‘했던 일’을
정리해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에게 전달하는 문서였다.
하지만 디지털 인프라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오늘날, 보고는 더 이상 사후적 텍스트가 아니다.
보고는 기업이
미래를 어떻게 인식하고자 하는지를 실시간으로 구성하는 동적 알고리즘 구조다 .
SK하이닉스의 ESG 데이터 통합 시스템(SRS)은 그 전환의 증거다. 500여 개의 KPI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PRISM 프레임워크를 통해 시각화된다.
이 구조는 보고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무엇을 본다고 선언하는가'를 구조화한다.
이제 ESG 보고는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인식의 범위에 포함시켰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이는 곧 ESG
보고서가 인식론적 도구(epistemological device)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며, 조직의 정체성 그 자체를 데이터로 코드화하고 기호화하는 경로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2. 생성형 AI는 ESG 보고의 작문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묘사 방식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2024년 구글은 자체 생성형 AI
‘Gemini’를 활용해 지속가능보고서를 편집·작성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고서 작성 ‘효율성의 개선’으로
이해하지만, 본질은 그 이상이다.
생성형 AI는 ESG 내러티브를 서술자의 시선이 아닌, 데이터 간의 통계적 상관관계로 도출된 알고리즘적 시선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이제 조직은 보고서에서 무엇을 ‘선택적으로 이야기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AI는 방대한 ESG 데이터셋에서 특정 지표를 강조하고, 다른 지표는 제거하며, 내러티브의 구조 자체를 재정의한다. 이때 생기는 근본적 질문은 다음과 같다:
보고서의 저자는 누구인가?, 서술의
윤리는 누구의 것인가?
보고서가 AI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ESG 전략 수립의 ‘해석 주체’가
인간 경영진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해 전치되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다.
이러한 전환은 ESG 보고서를 정보 공개의 산출물이 아니라 의사결정 프레임을 자동화하는 기계적 장치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3. 전략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모델’이 된다: ESG 의사결정의 수학화
AI가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개입한다는 말은 이미 진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ESG 영역에서 이는 더욱 구조적인 함의를
갖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ESG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위험’을 다루는 프레임이며, 이 리스크들은 물리적 측정이 불가능하거나, 다층적이고 복잡한 인과관계를
수반한다.
AI는 여기에 적합하다. 위성
이미지로 열대우림의 파괴를 실시간 감지하고, SNS 데이터를 분석해 브랜드 리스크를 조기 경고한다.
더 나아가 블랙록(BlackRock)은 자체 AI 기반 모델을 통해 Scope 3 배출량을 추정하고,
투자 의사결정에 반영한다. 기업이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 전략을 제안하고 기업이 승인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는 기업 전략의 중심이 인간의 해석 능력에서 데이터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ESG 보고서도 이에 따라 ‘정책적 문서’에서 ‘계산 가능한 함수의 결과값’으로
재구성된다.
4. 거버넌스의 진짜 질문: AI가 작성한 보고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기술은 발전했지만 윤리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ESG 보고서의 상당
부분이 AI에 의해 작성되고, 심지어 선택까지 받는다면, 이 보고서의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는가?
더 정확히
말해, 기계가 판단한 리스크가 틀렸을 때, 그 윤리적
귀속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이는 단순한 법적 책임을 넘어선다. ESG는 '신뢰'에 기반한 체계이며, 그
신뢰는 투명성과 윤리적 서술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선택한 이슈는 그 알고리즘이 훈련된 데이터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과거를 투영한 미래가 반복될
위험이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ESG 보고의 AI화는
기업의 최고 데이터 책임자(CDO), 최고 전략 책임자(CSO),
그리고
이사회의 책임과 권한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AI의 판단을 인간이 승인한다면, 기업은 그에 따른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해야 하며, ‘설명
가능성 있는 ESG 보고’ (Explainable ESG
Reporting)라는 새로운 원칙이 탄생해야 한다.
우리는 AI에게 보고를 맡기고 있는가, 아니면 전략의 자율권을 양도하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이 장이 제기하는 질문은 하나다:
AI는 ESG 보고서를 단순히 ‘작성’하는가, 아니면 그 보고서의 구조와 의미, 전략적 방향까지 ‘설계’하는가?
그 대답은 이제 명확하다. ESG 보고는 더 이상 사람의 언어로 구성된
서술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의 질서와 알고리즘의 패턴, 그리고
수학적 추론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향후 ESG 경쟁력은 AI 도입 여부가 아니라, AI가 생성한 전략에
대해 조직이 어느 수준의 윤리적·제도적 책임체계를 갖추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는 ESG 거버넌스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알고리즘은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닌, 기업 전략의 공동 의사결정자(co-decision maker)로 진화하고
있다.
보고를 넘어, 조직이 누구와 함께 세계를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전면적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SG는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과 권한의 재구조화다.
전략은 더 이상 종이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속가능보고서의 다음 5년, 그 문법을 다시 써야 할 시간
지속가능보고서는 이제 더 이상 ‘보고’의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전략의 구조, 위험 인식의 창, 그리고 기업 존재의 언어다.
21세기의 보고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경영의 판단, 자본의 방향, 사회적 정당성의 구조화된 표현이다.
우리는 더 이상 ESG를 무엇인가를 "추가하는 노력"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ESG는 경영의 문법 자체를 다시 쓰고 있으며, 보고서는 그 언어의
문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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