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의료 분야 인권 실태와 최신 동향: 한국·미국·유럽·일본 비교 분석(2)
페이지 정보
본문
2. 환자의 자기결정권: 정보 제공과 동의, 프라이버시와 차별 없는 의료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권리(Patients’ Rights)는 의료인
못지않게 중요한 인권 영역이다.
특히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환자가 자신의 치료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진정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할 권리, 개인의 의료 정보 프라이버시를 지킬 권리,
그리고
어떠한 차별 없이 공평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의사가 치료를
주도하고 환자는 수동적으로 따르는 가부장적 의료관행이 흔했으나, 현대의학은 환자를 의사결정의
중심에 두는 환자 중심의료(patient-centered care) 로 전환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 미국, 유럽, 일본의 환자권리 보장 현황을 비교하면서, 정보제공 및 설명
의무, 진정한 동의와 대리결정, 프라이버시
보호, 차별금지 측면의 정책과 사례를 살펴본다.
2.1 충분한 정보제공과 설명 의무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려면 먼저 질병, 치료옵션, 예후 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의사의 설명 의무는
법적·윤리적으로 확립된 개념으로, 한국에서도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환자에게 치료 상의 중요사항을 사전에 설명하고 동의를 받지 않으면 불법행위로 본다.
환자 입장에서 흔히 제기되는 불만은 “의사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인데, 한국은 언어적 격차나 권위적인 문화로 인해 아직도 환자가
충분히 질문하지 못하거나 의사가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7년 의료법 개정으로 수술 등 침습적 시술 시 사전에 서면동의를 받고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규정을 명문화하였고, 설명 의무 위반시 처벌 조항도 마련되었다.
일본도 1990년대 이후 의료사고 증가와 함께 인의도쿄고등법원 판례 등을 통해 설명의무가 확립되었으며, 2000년대 후반에는 의료현장에서 환자용 설명자료(동의서, 브로셔 등)를 표준화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은 1970년대 캔터베리 판결 등으로 informed consent 원칙을 확립한 이래, 모든 의료행위에
환자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환자가 원하면 의무기록 열람권도 보장한다.
유럽
각국도 환자권리장전 또는 관련 법률을 통해 환자의 알권리와 설명을 받을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는 2002년 ‘로이 쿠슈네(Kouchner법)’를 제정하여 환자의 동의권, 기록 접근권 등을 법률로 보장하였다.
그러나 정보제공 측면에서 문화적 차이도 있다. 동양문화권에서는
환자 본인보다 가족에게 먼저 상태를 알리고 가족이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관행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가족주의 문화에서 암환자 본인에게 진단을 숨기는 경우까지 있었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암 진단 disclosure” 가 보편화되어 현재는 거의 모든 환자에게
사실을 알리는 추세다.
한국도 과거에 비해 훨씬 직접 설명이 늘었지만,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이나 치매 환자의 치료결정 등에서 가족 의견이 크게 작용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미국, 유럽은 법적으로 대리결정권이 엄격히
규정되어 있어, 환자가 의식 없거나 의사결정 무능력일 때에만 사전지시서(Advance Directive)나 지정 대리인에 따라 결정하며, 그
외에는 환자 본인의 의사를 최우선시한다.
반면 한국·일본은
가족의 동의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 더 빈번했으나, 최근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 도입 등으로
환자 본인의 사전 의사를 존중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2.2 진정한 동의(Informed Consent)의 실질화
진정한 동의란 단순히 서명만 받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환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함을 의미한다.
각국 의료법과 의료윤리 규정은 모두
이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개선할 부분이 많다.
한국의 경우, 환자가 제시된 동의서에 서명은 했지만 내용이나
위험성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고 보고된다.
예를 들어 수술 동의서에 의학용어로 가득찬
설명이 적혀 있지만 환자는 실질적 위험이나 대안 등을 정확히 모르고 서명하는 일이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병원들은 쉬운 설명자료(알기 쉬운 용어, 그림
자료 등)를 마련하고, 일부 대형병원은 의료통역 코디네이터를
두어 청각장애인, 외국인 환자 등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일본도
환자 이해도 향상을 위해 노력 중이며, 특히 임상시험 등에서는 피험자 이해도를 평가하는 퀴즈를 동의
전에 실시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동의 절차에 상담간호사나 윤리위원회가
참여하여, 취약한 환자(예:
문해력이 낮은 환자)에 대한 특별 고려를 하는 제도가 발달해 있다.
유럽도 국가별로 약간 다르나, 대체로 환자의 교육수준에
따른 설명의무자의 책임이 강조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환자권리 옴부즈만을 두어 환자가 충분한
정보와 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면 신고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의 질 측면에서 문제 사례는 존재한다. 대표적
인권 침해 사례로, 환자 모르게 이루어진 의료처치가 있다.
미국 역사상 악명 높은 튜스키기 매독 연구에서는 흑인 환자들에게 치료를 제공하지 않고 연구 목적으로 경과만 관찰하여 큰
윤리적 비난을 받았고,
이 사건은 1979년 벨몬트
보고서를 통해 “인간 대상 연구의 윤리원칙” (자율
존중, 선행, 정의)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의료 치료 상황에서도 간혹 환자 동의 없이 의사가 임의로 시술을 추가하거나, 환자가 거부 의사를 밝힌 치료를 강행하는 일은 인권 침해로 간주된다.
한국에서도
과거에 보호자 동의만 받고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수술 등이 문제된 바 있으며, 이제는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불법으로 인식된다.
또한 정신과 입원의 경우, 환자 의사에 반해 가족과 의사가 강제로 입원시키는 관행이 쉽게 이루어져 왔으나,
2017년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자의입원 원칙과 비자의 입원 시 제3자 동의, 기간 제한 등이 도입되어 환자 자기결정권을 한층
강화했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 영역은 환자 자기결정권이 극적으로 발현되는 분야다.
유럽 대부분 국가와 미국, 일본 등은 이미 말기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고 제도화했다.
미국은 1991년
세계 최초로 환자의 사전의료지시(Advance Directive)를 제도화한 환자자기결정권법(Patient Self-Determination Act)을 시행하였고,
한국도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여 환자가 연명의료 계획서를 미리 작성하거나 임종 과정에서 의사표시를
하면 이를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법률이 아닌 후생성 가이드라인 형태로 환자 의사를 존중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실제 임상에서는 환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가족에게 미루거나, 의료진이 법적 책임을 우려해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한계가 지적된다.
2.3 프라이버시와 의료정보 보호
환자 프라이버시는 환자의 신체적 비밀과 의료정보가 침해받지 않을 권리이다.
진료 과정에서 얻은 환자의 질병 정보나 개인사는 함부로 누설 되어선 안 되며,
의료 데이터는 안전하게 관리돼야 한다.
오늘날 디지털 의료정보의 확산으로 개인정보보호가
중요한 화두가 되었는데, 특히 유럽의 GDPR(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 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의료정보를 포함한
모든 개인데이터의 사용에 명시적 동의와 강력한 안전조치를 요구한다.
GDPR은
정보주체인 환자에게 자신의 데이터 열람, 정정, 삭제(잊힐 권리) 등을 보장하며, 데이터
침해 발생 시 72시간 내 통지 의무 등도 규정한다.
이에
비해 미국의 HIPAA(의료정보 이동과 책임에 관한 법)는
보건의료 분야의 개인정보(PHI)에 특화된 연방법으로, 의료제공자
및 보험 등 보건의료 관련 기관에만 적용된다.
HIPAA는 환자의 의료기록을 환자
동의 없이 함부로 제3자에게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러나 범위가 의료기관 등에 한정되어, 예컨대 IT기업 등이 건강 앱으로 수집한 데이터는 HIPAA 대상이 아닐 수 있다.
반면 GDPR은 의료 여부 불문 모든 개인데이터를 포괄하기 때문에 보호 범위가 더 광범위하지만, 합법적 처리 근거가 있는 경우(예:
공공의 이익 등)에는 동의 없이도 처리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PIPA)을 제정하여 GDPR과 유사한 포괄적 보호체계를 구축했고, 의료정보도 이에 포함된다.
의료법에서도 환자 비밀누설 금지 규정이
있어 의료인이 환자 정보를 누설하면 형사처벌 받는다.
최근에는 민감정보인 건강정보에 대해 가명화
등 안전조치 후 연구 활용 등을 허용하는 법 개정도 이루어져,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간 균형을
모색 중이다.
일본은 2005년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하고 2017년 개정하여, 개인정보 보호위원회(PPC) 감독 하에 의료정보 보호를 강화했다.
일본의 개인정보 보호법(APPI)은 GDPR과 적정성 평가를 통해 연계성을 인정받고 있다.
프라이버시 관련 주요 이슈 사례로는, 의료기관 내부인의
정보유출과 해킹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2021년
핀란드의 한 정신건강클리닉에서 환자 상담기록이 해킹되어 협박당하는 사건이 발생, 의료정보 사이버보안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미국도 대형 보험사, 병원들의
해킹 및 환자정보 유출 사건(예: 2015년 앤섬(Anthem) 보험사 7,800만 명 정보유출)이 발생하여 막대한 손해배상과 시스템 개선이 뒤따랐다.
한국에서는
일부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진료기록을 병원 직원이 호기심에 조회하거나 외부에 유출하여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 배우 이병헌 씨의 병원 진료정보 유출 사건 이후 의료기관들의 내부 통제가 강화되었다.
또 다른 예로, HIV 감염인의 신상정보가 유출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적도 있는데, 이러한 사고들은 환자들이 치료 기피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어 치명적이다.
한국 정부는 의료정보 보호를 위해 병원 전자의무기록(EMR)에 대한
접근권한 관리, 접속기록 점검 의무화 등을 규정하고 정기 감독을 실시하고 있다.
한편, 환자의 사생활은 진료 중에도 존중되어야 한다. 진찰실이나 병실에서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없는지, 예컨대 불필요한
노출을 피하고 성별에 민감한 검사 시 요청하면 동성 직원 입회 등을 배려하는 것이 국제적 표준이다. 유럽은
이를 일찍부터 중요시하여 1997년 암스테르담 선언 등에서 환자 존엄과 프라이버시를 강조했고, 미국도 병원 평가기준에 환자 프라이버시 보장을 포함한다.
한국에서도
병원 인증평가에서 환자 권리존중 항목을 평가하고 있다.
2.4 치료 접근의 평등과 차별 금지
모든 사람은 인종, 성별, 나이, 장애,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관계없이 필요한 의료를 공평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미국은 2010년 환자보호와 부담적정보헙법(ACA) 제1557조를 통해 의료 분야에서의 포괄적 차별금지를
연방법으로 명문화했다.
“인종, 피부색, 출신국가, 성별, 나이, 장애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이 조항은 연방 보조금을
받는 거의 모든 의료기관(메디케어·메디케이드 수령 병원 등)에 적용된다.
여기에는 성별에 성정체성, 임신 등도 포함된다고 해석되어, 성전환자나 임산부 등에 대한 차별
진료거부가 금지된다.
이 법에 따라 예컨대 미국의 종교계 대형병원이 과거 트랜스젠더 환자의 자궁적출술을
거부한 것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유럽연합은 일반 균등대우 지침
등을 통해 고용뿐 아니라 재화·서비스 제공에서 인종이나 성별 등의 차별을 금지하며, 여기에 의료서비스도 포함된다.
EU 회원국들은 이를 자국법으로 구현하고
있어, 의료인이 특정 환자를 부당하게 거부하면 불법이 된다.
다만
유럽 각국의 건강보험 체계에 따라 국적·이주민에 대한 차별 이슈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난민이나 불법체류자의 의료 접근 문제가 사회적 논쟁이 되는데, 인권단체들은
이를 건강권 차별로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지만, 의료법에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어 일応환자가 왔을 때 합당한 이유 없이 돌려보내면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HIV 감염인,
장애인 등에 대한 암묵적 기피나 전원 요구 등이 있어 왔다.
최근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한 병원이 HIV 감염 환자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한 사건을 두고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행위로 평등권 침해”라고 결정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권고했다.
이 사례에서 병원은 전문지식과
시설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HIV 감염
여부가 진료와 치료의 조건이 될 수 없고, 표준예방수칙 외 별도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며 병원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결정은 한국
의료현장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HIV/AIDS 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공론화한 것으로
의의가 크다.
한국에서는 이 밖에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 미비나 의사소통 미흡으로 실질적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이에 대한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
예컨대 청각장애인
환자는 수어통역 없이 진료받다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거나, 지적장애인의 동의 능력을 존중하기보다는
보호자에게만 설명하는 관행 등이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의료인에 대한 인권교육과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일본은 헌법상 평등권 규정이 있지만 개별 분야 법률은 제한적이다.
의료현장에서 특정 질환(특히 감염병) 환자에
대한 차별이 드러난 사례로, 한 센터에서 C형간염 감염자를
수술 일정에서 뒤로 미룬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일본의 인권옹호 기관도 HIV 감염인 진료거부에 대한 시정권고를 한 바 있다.
일본은 최근
합리적 배려 제공 의무를 담은 장애인차별금지법(2016년 시행)을 통해 의료기관도 장애인이 불편 없이 진료받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다.
- 다음글의료 분야 인권 실태와 최신 동향: 한국·미국·유럽·일본 비교 분석(1) 25.07.27